여행기/아메리카 산행.여행기

9.옛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

늘산1 2014. 4. 13. 23:00

   2014년 1월25일 토요일 12일차

             24일 19시 이카출발 쿠스코(CUSCO)에 도착하니 14:00 꼬박 18시간을 밤새 버스를 탔다

             저녁내내 버스를타고 아침 8시쯤 제법큰도시 아반카이(ABANCAY 3200m)를 지난다

             3780m 재를지나서 PAMPA ANTA 마을을 지나면 고원도 나오고 JISKUKA CHA(3225m)마을을

             지나 옛잉카제국의 수도 쿠수코.CUSCO(3400m)에 도착한다

             실제 이동거리는 얼마되지않는데 2차로에 험한 산길이라서 속도를 내지못한다

             우리나라 였다면 진즉 4차로에 터널을 뚫었을것이다

             버스 이동내내 고소증으로 식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3400m 쿠스코에 내려놓으니 죽을지경이다

             고소증으로 3일정도 밥도못먹고 고생했다

             쿠스코 숙소는 비교적 깨끗하고 외국 여행자들도 많다 호스텔도 엄청크고 약200명쯤 수용할거같다

             숙소에 여장풀고 고소증으로 여행갈 엄두가 나지않아 휴식

       1월26일 일요일 13일차

             짐을 가지고 7시 조식후 버스투어 버스비 130솔=약52.000원

             통합입장권 130 USD 쿠스코 근교유적과 마추피추까지 입장할수있다

             9시50분 숙소출발 친체로 11시도착

             12시30분 친체로 출발 13시 모라이 도착 30분간 전망후 사진촬영

             13시30분 모라이출발 14시 살레나스염전도착 30분관광

             14시30분 염전출발 15시 우루밤바에서 점심 부페식사 35솔 팁2솔 따로 줘야한다

             16시30분 우루밤바출발 17시 오얀따이땀보 도착 50분간 관광

             19시 마추피추 마을인 아구아 갈리엔테스 열차이동예정 약1시간 출발지연

 

 

       남미 최대의 제국을 건설한 잉카는 1250년경부터 1533년까지 수도 쿠스코를 중심으로 번영을 누렸다.

       페루 중앙 산악지대에서 태평양 연안과 안데스 산맥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았던 잉카 부족이

       세운 잉카 제국. 이들은 독자적인 케추아어를 사용했으며, 아이유라 불리는 일종의 혈연·지연 집단을

       사회적 기반으로 삼았다.

       쿠스코는 케추아어로 '배꼽'을 뜻하는데, 이는 잉카족이 자신들의 수도인 쿠스코를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했다는 단적인 증거라 할 수 있다.

        쿠스코는 퓨마의 형상을 띠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국 전체의 축소판으로 그에 걸맞게 건물과 시설이

        배치되었다. 실제로 궁전을 중심으로 중요한 건축물들은 와카이 바탄 부근에 배치되었고, 신분이

         낮을수록 그 주거지는 '도시 변방'으로 밀려났다

        잉카 제국의 중추인 쿠스코에는 궁전을 비롯한 수많은 건물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스페인인들이

        잉카를 정복한 후 그 대부분을 파괴했기 때문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건물은 거의 없다.
       그 중에서도 쿠스코에서 가장 유명했던 비라코차 신전과 '태양의 처녀 궁전'인 아쿠야와시, 태양 신전인

        코리칸차 같은 종교 건축물은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바로 그 위에 가톨릭 교회와 수도원들이 건설되었다.

 

 

 

 

 

 

 

 

 

 

   25일 아침에 일어나보니 이런고개를 넘고있었다 해발3800

 

 

 

     드디어 쿠스코에 도착했다

 

 

 

 

    26일 버스대절 영어가이드와 쿠스코 주변 유적지 탐방 기사아저씨다

 

 

 

   유적지 가는도중 번지점프장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친체로 마을인데 쿠스코부근 유적중 제일 아름다운 마을이다

    잉카의왕이 휴가를 보내기 위하여 만들어진 마을이다 해발 3627

    기념품을 파느라 설명중이다

    이 성당이 있던곳도 다른곳과 마찬가지로 잉카의 종교시설이 있었다고한다.

    하지만 스페인 군대는 역시나 그 종교시설을 밀어버리고 잉카 건축 기단위에 성당을 세웠다

 

 

 

 

      보는앞에서 제작방법을 시연도 해준다

 

 

 

 

 

 

 

 

 

 

 

 

 

 

 

 

 

 

 

 

 

 

 

    석조기술이 대단하다

 

 

 

 

 

 

 

 

 

 

 

    감자꽃 남미는 땅이 척박하기때문에 옥수수와 감자가 주생산물이다

 

 

 

 

 

 

 

 

 

   가이드가 설명중

 

 

 

 

 

     코너에 돌을 이용한 모습

 

 

 

 

 

 

 

 

 

 

 

 

 

 

 

 

 

      성당이다

 

 

 

 

 

 

 

 

 

 

 

 

    나이드신분들은 지금도 이런복장이다

 

 

 

 

    모라이로 이동중 설산 해발 5000대

 

 

 

 

 

 

    흙벽의 마을 골목을 통과하여 모라이로 간다

 

 

 

 

 

     여기서부터는 비포장이다

 

 

 

 

 

 

 

 

 

 

 

 

    모라이

    쿠스코(Cusco) 근방에 있는 잉카시대의 농업실험장, 모라이(Moray)입니다.
    가장 낮은지대부터 차차 높은곳으로 옮겨심는 식으로 곡물들을 고산지대에 적응시켰다고 하네요.
    해발3400m의 농업기술연구소. 모라이. 잉카의 농업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보여주는 원형식 밭. 

    계단식 원형구조가 주는 독특함 뿐만 아니라 가이딩을 듣다보니 각 계단의 높이를 달리하여 바람과 

    햇빛의 달리함은 물론 계단높이에 따른 온도변화도 이용했다고 한다. 보이는 저 깊이가 280m인데 

    윗쪽밭과 바닥의 온도차가 약 5-15도 정도라 한다. 주요작물은 옥수수와 감자. 비가 많이와도 

    물이차지않고 스민다 하니 놀라운일이 아닐수 없다

    관개 및 배수시설이 층별로 잘 되어있어, 우기에도 최하부 중앙 원이 수영장이 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잉카제국 많은 개량으로 인해 당시 1500여종, 현재는 3000종의 감자가 존재한다고한다,

 

 

 

 

 

 

    페루 가족나들이 인듯 나도 한컷

 

 

 

 

 

 

 

 

    무너진곳을 나무로 보강

 

 

 

 

 

 

 

 

 

 

 

 

 

 

 

 

 

 

 

 

 

 

 

 

      maras 마을의 소금염전 살리네라스. 원래 바다였던 이곳은 갑작스러운 융기로 인해 하늘과 맞닿은 고산지대가 

      되었다는대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여러 이론이 있지만, 여튼 산속에서 미네랄이 녹아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것을 막아서 태양열을 이용해 물을 증발

      시켜 3000미터 산속에서 소금을 얻는 구조였다. 우유니 소금 사막과 같은 사막이 이 산 어딘가에도 있나보다.

      염전의 규모가 상당했다.

      소금 생산에는 이틀이 소요되고, 주 3회 생산이 가능하다고 한다.

      빛도 잘 들고 날도 더워서 잘될것 같다.

      소금은 층별로 색깔이며 용도가 다른데, 맨 아래 형성된 소금은 의약품으로 위는 순차적으로 식용 및

      다른 용도로 쓰인다고 한다.

 

 

 

 

 

 

 

 

 

 

 

 

 

 

     8부 산허리에 비포장도로로 자동차로 염전까지 들어온다

 

 

 

 

 

     마을 회의하는모습

 

 

 

 

 

 

 

 

 

 

 

 

 

 

       짠물 물길

 

 

 

 

 

 

 

 

      소금

 

 

 

 

 

 

 

      여기에서 짠물이 공급된다

 

 

 

 

 

 

 

 

 

 

 

 

 

      우루밤바에서 늦은점심 부페식

 

 

 

         성스러운계곡 오얀따이 땀보

        오얀타이탐포는 한 남자가 공주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세운 마을라고 한다

        아래는 감자 등을 재배하던 밭이며 위에는 신전을 건설하다가 무슨이유에선가 버려진 흔적이라고 한다

        땀보(TAMBO)라는뜻은 여관이라는 의미로 잉카시대 숙소 또는 요새였다고한다

        

         

        

 

 

 

 

 

 

 

 

 

 

 

    저큰 돌은 산아래의 강가에서 가져와 태양의신전을 건설하다 중단된거라함

 

 

 

 

 

 

 

 

 

 

 

 

 

 

 

 

 

   흙집이 있는 이곳 마을에는 잉카시대에 만들어진 수도와 하수도를 지금도 사용하고있다